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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0.18 이어폰이 부러진 날
-수능 1년 남은 딸에게-

안녕!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딸.
오늘은 이어폰이 부러진 날이야. 일주일 내내 하루종일 강좌가 있어 강남으로 출근하는 거 알지?
어제와 다르게 오늘은 지니를 이용해 니가 지겹다던 '하늘 바라기'를 들으며 여유롭고, 신나게 출근하던 중이었어.

강의실에 도착하여 의자에 앉는데 갑자기 노래가 들리지 않는거야. 그래서 뒷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을 꺼내 보았지. 아뿔사 이어폰의 꽂는 부분이 휘어버린거야.

갑자기 즐거움은 사라지고 부러진 이어폰만 바라보았어. 후회였지.

그러고 생각하는데 딸이 태어나고 엄마와 함께 저지른 일에 대한 후회가 떠오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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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2000년 겨울이었어.
열심히 공부해서 다시 수능을 보고 99학번이 된 나이(28살)든 엄마가 1학년을 마치지도 못하고 휴학을 하게되었지. 갑자기 찾아온 딸을 이쁘게 나으려고 말이야.

아빠는 엄마와 결혼하면서 한가지 약속을 했어.
'세상이 여성인 너를 힘들게 해도 언제나 네편이 되어 지켜줄께. 그리고 하고 싶은 공부도 할 수 있게 도와줄께.' 라고 말이야.
복학을 하려는 엄마를 위해 백석할머니(외할머니)댁 근처로 이사를 가기로 했어.
그런데 살던 집은 나갔는데, 들어 갈 집은 계약이 파기가 된 거야. 너를 업은 엄마와 난 울면서 한 겨울에 집을 찾으려 헤메고 다녔지.

어렵게 없는 돈(대출 끼고)으로 아파트를 사서 간신히 들어갔어. 아빠는 새벽에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을 했지만, 엄마 혼자만 있는 집이 아니라, 딸이 함께 있는 집이라 안심도 되고 뿌듯했어.
니가 아프면 병원을 가려고 하는데 택시도 없고 불편한 것이 많았어. 운전을 하지 않던 아빠가 처음으로 운전을 하게 된 것도 이 때야.

그리고 다음 해 엄마 복학을 위해 널 백석할머니댁에 맞겼지.
'니가 크면 이해해 줄거라 믿어. 미안해'라는 글도 못 읽는 네게 편지를 쓰고 조금의 위안을 받았지.
주말에 헤어지려면 니가 '엄마'를 울부지며 부르던 소리가 지금도 귓가에 선해. 우린 눈물을 흘리며 텅빈 아파트로 매주 돌아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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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해도 사실이 변하지는 않지만 니가 대학생이 되기전에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
부러진 이어폰은 버려야 하겠지만, 딸에 대한 미안함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 아마 니가 너만한 딸을 데리고 와도 똑같이 그때의 울부짓음이 기억되겠지.

미안해. 딸!
Posted by 구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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