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서울 생활을 한지 20년이 되었다. 
3층짜리 빌라를 보면서도 두리번 거리고, 답답한 공기와 아는 사람없는 서울생활을 시작하던 그 해 봄엔 전철을 타고 인천 바다를 보러가는 것이 낙이었다. 대학교에서도 고등학교처럼 수업이 계속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오전 수업이 없거나 화요일에는 아예 수업이 없었다. 낯섬, 외로움, 답답함... 
사방이 산으로 둘러 싸인 촌에서 살아서 그런지 비린내 나고 바람부는 바다가 왠지 좋았다. 가슴이 탁트이고, 감상에 젖어 들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바쁜 일상과 함께 사라졌다. 그 이후로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살면서 뭔지 모를 허전함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 보니 허전함의 하나는 '가마솥밥'이고, 또 하나는 '동네사람들'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올해가 되어서야 그 허전함의 실체를 느꼈다. 왜 두가지가 그렇게 그리웠을까?

얼마전 "세상에서 가장아름다운 수학"이라는 책을 보았다.  그 중에서 [천재 수학자가 태어는 조건]이라는 장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보고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인간이 행복하기 위한 조건에 대해서도 연상되는 것이 있었다. "바로 이것이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위의 두가지가 떠올랐다.
[천재 수학자가 태어나는 조건]
1. 겸손 : 신이든 자연이든 무엇인가에 한결같은 마음
2. 아름다움 : 아름다운 것을 많이 보는 것
3. 정신을 존중하는 것 : 물욕이 아니라 신심을 가지는 것
[인간이 행복한 조건-인문학이 풍성한 사회]
1. 자연이나 신에 대한 경외감 : 역사학
2. 문학이나 예술 작품에 대한 감동 : 문학
3. 관계에 대한 책임감 : 철학

해질녘 모내기를 할때 주린배와 퉁퉁부른 손가락, 아픈 허리를 참으며 느껴본 어두어지며 밀려오는 환희에 대한 추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백열등전구 밑에 멍석깔고 둘러 앉아 함께 먹던 가마솥밭의 맛이 그리워진다. 동네 이모 삼촌들이 막걸리를 마시며 부르던 흥겨운 가락도 떠오른다. 가을이 되어 타작을 할때 알곡이 꽉찬 벼를 씹을 때 느껴오던 '자연의 위대함'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도시라는 곳에서는 절대 느낄 수 없었던 그 느낌들을 이 곳 서울에서 느끼고 싶었다. 아이들에게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이때부터 우리동네에서도 이렇게 가마솥밥을 함께 해먹으며 아이들과 함께 노래가락에 흥겨워 하고싶다고 노래를 하고 다녔다. 그러던 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밥상혁명"이라는 책을 소개해 주었다. 

한숨에 읽어 내려간 "밥상혁명"은 또 다른 가르침을 주었다. 따듯한 추억의 가마솥밥을 먹는 것도 소중한 것이지만, 우리의 밥상을 지속 가능한 안전한 밥상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더 소중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밥상을 바꾸는 두가지 열쇳말
1.지역 먹을 거리 : 얼굴있는 먹을 거리
2.식량주권 : 소농을 살리는 식량자급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밥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얼굴있는 농부들이 만든 먹을거리를 지속가능하게 하는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조금더 구체적인 "얼굴있는 밥상 모임"을 해보자고 준비한다. 설레인다. 그리고 어려움이 많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웃이 되고, 함께 가마솥밥을 먹는 것과 더불어 꼬마 농부가 되어 도시농업도 해보는 꿈을 꿔본다.

매달 첫째주 토요일 오후 5시에 회비 5,000원과 숫가락과 젓가락을 들고 모이면 된다. 


Posted by 구라다